| |
민족춤패(몸짓패)의 역사
민족춤패(몸짓패) 역사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파고 들어 가는 것보다 ‘민족춤패(몸짓패) 역사는 아주 짧습니다’라는 말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 다. 실질적으로 잘 몰라서일수도 있지만 문제는 뿌리를 찾으려는 노력의부족, 그리고 그 민족 춤패(몸짓패) 결성 배경에 어떤 특별한 사상성이나 목적의식성이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 기 때문입니다. 전국적 차원에서의 민족춤패(몸짓패) 역사와 대구경북지역 단위에서의 민 족춤패(몸짓패) 역사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에서 결성되었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전국 차원의 민족춤패(몸짓패) 역사는 실질적으로 몸짓이라는 춤으로의 언어가 지금으로까지 어떻게 발전되어왔는가라 는 측면이며 단위에서의 몸짓 역사는 동아리로, 패로 그러니까 조직의 차원으로 발전되어 왔는가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1980년대초 학생회 단위 사업방식과 투쟁 방식의 문화 주 로 정치 연설이라는 것을 가장 중요한, 기본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 때 학우들 의 수준은 정치 연설을 듣는 것만으로도 문화적 요구가 충분했습니다.
198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학생회 단위 문화는 자주 학원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학 생회에 관해 제기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88년경부터 문예일꾼들을 묶어서 학생회 선거 판 에서 문선이라는 형식들이 창출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주로 불리워졌던 해방춤이나 농 민가등의 대중적이고 편한 노래에 맞추어 동작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 간단한 박자 율동 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러한 것에 대해 비판이나 문제 제기보다는 오히려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게 되습니다.이러한 동작의 수준에서 춤적인 요소가 가미되면서 몸짓으로의 토대를 구축하게되는 것은 1989년 평양에서 있었던 세계청년학생평양축전을 전후로 해서 그때의 중심 노래였던 월츠풍의 평양축전가에 맞춘 남녀짝춤이 유행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입니다. 지역 단위로 봤을때는 이러한 전체적인 흐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지금 현재 있는 지역의 몸짓패의 대부분은 소위 말하는 선거선동대라는 것에서 그 첫출발을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88년 정도부터 해서 학내 학생회 선거에 중요성이 부여되면서 후배 녀석들을 중심으로한 선동대라는 것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때의 선동대는 대부분 문예선전선동의 개념보다는 노래나 풍물,탈등 학내에서 그런대 로 익숙한 갈래와는 다르게 색다른(?) 어떤 형식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모으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언어이기는 했지만 명확한 목표점이나 지향점을 향한 것은 아니었 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각 후보 진영의 핵심 선거 구호를 힘있는 동작으로 외쳐대고 노 래 한두곡 정도에 무대를 채워주는 그러한 정도의 형태였습니다. 선거가 끝나면 대부분의 선동 대원들은 각자의 역할로 비중 있는 학생회 간부의 역할을 하게되고 또 다음해 선거 가 되면 이렇게 해체되었던 선동대가 주위 보이는 몇몇 후배 녀석들을 묶어 내면서 또 만 들어지곤 했습니다.이러한 시기 대중문화의 발전 또한 엄청난 양적,물적 발전이 높아지면 서 우리 학우들의 문예에 대한 요구는 편향이든 올바른 방향이든 점점 높아져 갔습니다.
이러한 과정들을 반복하면서 몸짓패의 모습으로 급속하게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91년 하 반기부터 보급되기 시작했던 탱고라는 '청년진군가' '백두산' 등에서부터 였고 계속 이 어 '얼굴찌푸리지 말아요'등 밝고 편한 노래들의 분위기에 맞추어 변해 왔었습니다. 실제 몸짓패로의 구성 같은 경우에는 어떤 명확한 변혁 지향성이나 문예운동으로서 언어로 자 리잡으려는 노력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학생회 선거기간동안 힘든 조직생활, 집 중적인 창작, 공연, 교양활동등으로 인간적 관계가 엄청나게 깊어지게 되고 또한 다른 일 꾼들을 비롯한 학우들이 엄청나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자만심은 아니겠지만 나름대로 자긍심도 생겨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이후의 모습에서 바로 민족춤패(몸짓패) 결성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단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이대로 헤어지기가 너무 아쉽다. 계속 같이 지냈으면 좋겠다" "힘 들기는 하지만 너무 재미있고 사람들도 너무 좋아하는데 우리 계속 있으면서 뭐라도 해보 지 않을래?"
대부분의 단위 몸짓패의 결성은 이러했었고 이렇게 만들어진 몸짓패는 명확한 위상을 찾 거나 해명 작업이 진행되기보다는 예비대학, 출범식, 대동제, 문예투쟁등 주로 학생회 단 위의 기본사업에 내몰리는(?) 활동을 주로 하게 되었습니다.
민족춤패(몸짓패) 건설의 역사 속에서 건설배경의 문제점을 정리해봅니다.
첫째는.가장 핵심적인 부분일 수도 있는데 자기 언어해명작업을 하는데 소홀했다는 것입 니다.극공연이나 써커스 공연에 좀더 많은 손님을 끌어모으기 위해 난리 법석을 다하는 삐 에로마냥 식상하지 않은 신기한 모습으로 학우들을 모아내고 학우들을 지루하지 않게 만 든다는데 몸짓패의 기본적 역할을 부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단순한 표면적 일차적 역할 로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조국 변혁 운동에 복무하는 구국 문예로서의 언어로 어떻게 설 것인지에 대한 전망,해명 노력이 많이 부족했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여러 단위와의 조직적 토론없이 무작위로 건설되었다는 것입니다. 무작위 건설이라는 가장 적나라한 말속에 다 포함되어 있겠습니다만 조직적 위상을 어떻 게 가질 것인지 학우들을 만나는 공연방식을 어떻게 가져가며 어떻게 모임을 만들어 활동 하며 기타 등등 이러한 것들에 대한 전반적 합의 없이 단순히 어떤 몇몇 사람들은 감정에 서부터 시작되고 진행되었다는 것이 문제지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건설 배경에서 여러 문제점들과 부족한 면들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짧은 역사에 그해 몸짓패가 그동안 전 대협,한총련 운동 역사속에서 찍은 구국운동의 발자국은 엄청나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 는 아니 인정해야할 사실인 것입니다. 역사속에서 교훈을 검토하고 검토하면서 백만 청춘의 가슴에 애국,구국의 뜨거운 불덩어 리를 심어넣어줄 눈물겹도록 진실하고 치열한 구국몸짓의 민족춤패(몸짓패)로 설 것입니 다.
민족춤(몸짓)을 추기위해 제기되는 3대요소
첫째는 음악적 요소입니다. 음악적 요소는 단순히 노래패가 불러주는 노래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음악적 요 소는 춤을 출 때 들리는 소리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아닙니다. 춤을 추는 사람이 음악이라는 것을 얼마나 이해하고 감수성을 자기 것으로 얼마나 받아들 이는가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실제 춤을 추기 위해서는 들려오는 소리의 의도를 최대한 잘 이해하고 자기의 것으로 소화하여 나의 춤으로 뱉어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연기적 요소입니다. 몸은 신체전체를 말하는 것이고 몸짓은 신체를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단순히 흐느적거리는 것뿐만이 아니라 연기력을 갖추어서 춤을 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연기라 고 해서 무엇인가를 꾸며낸다는 것이 아닙니다. 민족춤패(몸짓패) 연습과정을 지켜보고 있으면 '시선처리' '표정관리'라는 말들을 들을 수 있습니다. 눈빛 하나까지 그리고 얼굴모 습 하나에까지 최선을 다한 마무리 작업이어야 하고 그래야만 춤은 더욱 감동있을 것입니 다.
셋째는 공간적 요소입니다. 균형, 감각, 감수성으로 구성된 전체를 어떻게 활용하는가하는 요소를 말하는 것입니다. 몸짓일꾼들이 어떤 자세로 이후 역사에 임하느냐에 따라서 엄청나게 많은 변화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 현재 몸짓일꾼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모습들은 바로 몸짓이 올바른 구 국 문예로 가는데 있어서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①개척자로서의 주체성이 제일 시급합니다. 민족춤패(몸짓패) 위상에 대한 토론이나 민족춤패(몸짓패)의 방향에 대한 토론, 민족춤패 (몸짓패)란 과연 무엇인가등등 이런 근본적 문제가 제기된 것이 벌써 몇 년전의 일입니 다. 실제 몸짓일꾼들이 가져야 할 자세중에 가장 시급하고 또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주체 성, 개척성입니다. 사업을 하다보면 투쟁을 하다보면 몸짓에 대해 해명되지 않음으로해서 생기는 많은 문제 와 고민들이 있습니다. 또한 그러한 것들속에서 한사람씩 고민하고 민족춤패(몸짓패)를 그만두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떻게든 내용을 만들어가고자하는 능동적인 자세가 너 무나도 부족합니다. '우리는요 갈래교양을 하고 싶은데 민족춤패(몸짓패)에 대해 나온 책은 하나도 없더라고 요?" "위상정립이 제대로 안돼 있다보니까 정말 나아갈 방향을 잘 모르겠어요" "우리는 정말 그냥 분위기만 잘 띄워주면 되나요 선배?" 많은 질문들을 쏟아내면서도 그것을 내 스스로가 한번 풀어보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는 선 배든 후배든 많이 부족했고 아직 현재 몸짓일꾼들또한 그냥 그대로 떨어지는 사업만을 메 꾸어 나가고 있습니다. 내가 한번 해보겠다,우리 동아리가 먼저 내용을 만들어보자,이런 것도 해보고 저렇게도 한번 해보도록 하자등등의 좀더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모습이 있어 야 할 것입니다. 몸짓일꾼 여러분, 더이상 민족춤패(몸짓패)를 개척갈래로 내용없는 갈래로 두시렵니까?? 내가 민족춤패(몸짓패)에 속해 몸짓을 하고 있지만 그냥 이렇게 이렇게 재미로 1,2년 하다 가 그만두면 된다,똑똑한 사람들이 연구해서 곧 정리된 내용으로 내려오겠지라는 생각을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민족춤패(몸짓패)라는 갈래는 투쟁의 현장에서 우리들 삶의 현장 에서 생겨났고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나아갈 방향또한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서 투쟁의 현장에서 나오게되고 또 거기에서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책 저런 책 수북히 쌓아놓고 이것저것 조금씩 배껴놓는 식의 연구작업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활 동속에서의 생각들을 짬나는대로 목적의식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활동속에서의 생 각들을 짬나는대로 목적의식적으로 몸짓일꾼들과 토론하고 정리하고 연구할 때만이 올바 른 구국문예로서의 자리를 잡을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바로 나로부터,우리 동아리부터 시작합시다.
②연예인이 아니라 활동가,혁명가입니다. 민족춤패(몸짓패)의 주구성원은 대부분의 동아리가 마찬가지 이겠지만 1,2학년입니다.대 학사회에서 아직 어린 나이이고 청년으로서의 역할에 대해 인식하고 활동하려고 결심한 지 얼마되지 않아서 경험도 많이 약한 나이입니다. 민족춤패(몸짓패)에 대한 인기는 아직 까지 살아있고 하늘을 지를 듯합니다. 휘날리는 머리띠를 길게 매고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 데 받으며 한탕뛰고 나면 실수가 한두개 있었다 하더라도 괜실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 시 작합니다. 공연을 마치고 나면 혹시나 누가 날 알아봐주지나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괜실히 고개를 바짝들고 다닌 기억이나 그런 마음은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공연이후 선배님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서 멋있다는 소리를 기대한 적은 없었는지 생 각해봅시다. 몸짓일꾼들은 MBC무용단이나 내지는 화려한 무대를 꾸며내는 연예인이 아닙니다. 민족 춤패(몸짓패)를 걱정하는 많은 사람들은 쇼맨쉽이나 무대환상증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내 가 스타가 되기위해 무대에 서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내가 예뻐보이고 멋있어 보이고를 신경써서는 안될 것입니다. 어느 학교의 한 1학년 후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총련 진군가같은 쟁가몸짓을 하고나면 뭐좀 했는 것같은데 율동이런거 하고나면 뭐 했 는 것같지도 않아요" 내가 뭐좀 했는 것같은 느낌을 가지고 내가 만족함을 챙기기위해서 몸짓을 하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명확한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동작의 화려함이 아니라 동작의 진실함을 고민해야 합니다. 머리띠를 어떻게 묶을 것인가 어떤 옷을 입을 것인가 에 대한 고민은 두 번째해야할 고민입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몸짓으로의 생각을 조금이라 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민족춤패(몸짓패)를 무용단으로 딴따라로 전락시키는 것이고 민 족춤패(몸짓패)의 발전전망을 밝히는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
|